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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은 했지만 미래는 없었다…파경 위기 몰린 '사돈기업' 여천NCC
‘평균 연봉(8900만원) 1위, 근속연수(19.5년) 1위.’2010년 한국에서 제일가는 직장은 삼성전자(평균 연봉 8600만원)가 아니었다. 급여가 더 많은데도 업무 강도는 훨씬 낮은 ‘꿈의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한화그룹과 DL그룹이 50 대 50 비율로 합작한 여천NCC. 채용 공고가 나오기만 하면 취업 사이트가 들썩이던 바로 그 회사다.1999년 설립 후 매년 수천억원 흑자를 내며 탄탄대로를 걷던 여천NCC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중국과 중동이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우후죽순으로 지은 탓에 글로벌 에틸렌 시장이 공급 과잉에 빠지자 에틸렌 하나에만 ‘올인’한 여천NCC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급기야 3100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몰렸고, 한화와 DL이 지난 18일 논란 끝에 1500억원씩 긴급 지원하기로 하면서 겨우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업계에선 여천NCC의 추락에 대해 “올 게 왔다”는 반응을 보인다. 한화와 DL 간 뿌리 깊은 반목과 노사 갈등으로 누구도 합작회사의 미래를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여천NCC는 1999년 설립 이후 벌어들인 순이익(5조5516억원)을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에 쓰기보다 두 곳뿐인 주주 배당(4조4300억원)에 대부분 투입했다. 시장에선 한화와 DL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되는 한 여천NCC가 석유화학 불황을 이겨낼 신무기를 확보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사돈에서 앙숙이 된 한화와 DL여천NCC가 설립된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이다. 당시 에틸렌 과잉 생산으로 수익성이 급락하자 전남 여수에 별도로 공장을 운영하던 대림산업(현 DL케미칼)과 한화석유화학(현 한화솔루션)이 합치기로 했다. 지분은 50 대 50.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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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 앞둔 '샤힌 공장', 울산 석화업계 희비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구원투수가 될까, 동종업계를 사냥하는 ‘매’(샤힌의 아랍어 의미)가 될까.에쓰오일이 9조원을 들여 울산 온산 국가산업단지에 짓고 있는 샤힌 프로젝트 가동을 1년여 앞두고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곳에서 쏟아내는 에틸렌(연 180만t)과 프로필렌(연 77만t)을 활용해 각종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다운스트림 업체들은 “질 좋은 제품을 싸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반면 에틸렌 과잉 생산에 신음하는 업스트림 업체들의 주름살은 깊어지고 있다.20일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 효성화학, 금호석유화학 등 10여 개 다운스트림 업체가 에쓰오일과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쓰오일이 샤힌 프로젝트에 세계 최초로 도입한 TC2C 시설 덕분에 기존 업체보다 저렴한 가격에 에틸렌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TC2C는 원유를 중간 정제 과정 없이 나프타와 액화석유가스(LPG) 등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기존 정유 공정보다 6~7배 높은 수율로 스팀 크래커의 원료를 조달할 수 있다. 에쓰오일은 가계약을 맺은 업체에 바로 에틸렌을 공급할 수 있는 배관망을 연결하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에쓰오일의 에틸렌 생산량은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라며 “규모의 경제와 고효율 설비를 감안하면 중국과 비교해도 가격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정부 기조에 따라 에틸렌 270만~370만t을 줄여야 하는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등 업스트림 업체들은 생산량 감축 규모를 늘려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현재 울산 석유화학단지에서 생산한 에틸렌(연 174만t)과 프로필렌(연 38만t)보다 많은 물량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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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석유화학 큰 위기, 신속히 대책 마련하라"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우리 핵심 산업 가운데 하나인 석유화학이 상당히 큰 위기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며 “관계 부처가 석유화학 사업 재편 종합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하도록 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주재한 제7차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글로벌 수요 부진, 중국발(發) 공급 과잉으로 주요 기업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신산업 성장동력 창출과 동시에 우리가 강점을 가진 이런 전통산업도 포기하면 안 된다”며 “전통산업의 경쟁력 회복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기업도 책임감을 갖고 동참해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이 대통령이 취임 후 회의 석상에서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공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 간 감산·통폐합 등 석유화학 구조 개편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주도의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지만 공정거래법 규제와 기업 간 이견 등으로 공전하고 있다.李 "2차 내수 활성화 필요"…추가 소비쿠폰 시사"온실가스 배출 목표 달성하려면 전기료 오를 수밖에 없어" 언급도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주재한 제7차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차 내수 활성화가 또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가 110.8로 4년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내수가 회복하자 추가 대책을 주문한 것이다. 3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통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추가 발행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이 대통령은 이날 “급변하는 통상 질서에서 안정적인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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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 구조개편 무임승차 기업 엄중 대응"
정부가 공급 과잉으로 공멸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이달 말 ‘석유화학 구조개편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기업들에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촉구했다. “무임승차 기업에는 엄중 대응하겠다”는 경고도 내놨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감산·통폐합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정부가 나서 구조 개편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발적으로 사업 재편해야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일 한화오션 경남 거제조선소를 찾아 “최근 위기에 직면한 석유화학기업들도 과거 조선업체의 구조조정 노력을 거울삼아야 한다”며 “석화업계 공동의 노력과 책임 있는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조선업이 2010년대 후반 수주절벽의 위기를 자산 매각과 사업 조정 등 자구 노력 및 구조조정으로 극복하고 한·미 관세협상의 핵심 업종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석유화학산업의 현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 업계가 합심해 설비조정 등 자발적인 사업 재편에 참여해야 한다”며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범부처가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앞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국내 석화업계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남 여수산업단지 생산 시설을 24% 감축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약 640만t인 여수산업단지 에틸렌 설비 중 150만t을 줄여야 하고, 울산·대산단지도 같은 수준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산업부는 이 보고서와 업계 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이달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산업단지별 감축 목표를 제시하는 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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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틸렌 30% 안 줄이면 공멸"…日, 정부 앞장서 '석유화학 대수술'
“6년 내 에틸렌 생산량을 30% 줄여야 공멸을 막을 수 있다.”2014년 11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시장 구조에 관한 조사 보고서’는 당시 세계 5대 석유화학 강국이었던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 흑자를 내는 기업들에 당시 연 720만t 규모인 에틸렌 생산시설을 통폐합해 470만t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는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기업들끼리 알아서 ‘빅딜’을 하라고 압박한 건 아니었다. 공정거래법 등 각종 규제에서 예외로 빼주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판을 깔아줬다. 그러자 일본 1위 미쓰비시케미컬과 2위 스미모토화학은 이듬해 에틸렌 공장 문을 일부 닫았다. 일본 석유화학업계의 다이어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 정부 주도로 시장 개혁한 일본10여 년 전 일본 석유화학 시장 상황은 지금의 한국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의 움직임은 정반대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에틸렌 등 범용 석유화학 제품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몸이 가벼워진 기업들은 중국이 따라잡지 못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에 역량을 집중했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중심을 잡아주지 않은 탓에 기업마다 범용 제품 감산 및 통폐합을 놓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다. 적자 사업을 계속 안고 가다 보니 스페셜티 기술을 익힐 사람도, 돈도 부족하다. “일본을 롤모델 삼아 한국도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일본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열쇠를 쥔 것은 정부였다. 경제산업성은 2014년 구조개혁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5년 단위의 명확한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1개 현(광역자치단체)에 1개 에틸렌 회사만 남긴다’는 등의 가이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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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 부진에…미래사업 손놓은 석화기업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중국의 저가 공세 여파로 에틸렌 등 범용 시장에서 큰 손실을 보자 ‘미래 먹거리’인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제품 투자를 줄이고 있다. 적자를 내는 범용 시장을 축소하고, 스페셜티 제품에서 중국과 격차를 벌려야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친환경 분야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바람을 타고 탄소 배출량을 줄인 재활용 석유화학 제품과 바이오 소재 수요가 늘어날 게 뻔하지만, 궁지에 몰린 국내 기업은 당장 돈이 안 되는 친환경 사업을 잇따라 접고 있다.12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은 일제히 재활용 플라스틱, 바이오 플라스틱 관련 투자를 중단하거나 연기했다. 기존 석유화학 공정에 친환경 공정을 더한 기술들이다.LG화학은 충남 대산에 짓기로 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인 PBAT 공장 관련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고, 관련 인력도 재배치했다. PBAT는 별다른 처리 과정 없이 자연에서 분해되는 플라스틱 원료란 점에서 기존 석유화학 소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소재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은 울산 재활용 플라스틱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 폐플라스틱으로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만드는 롯데의 대표적인 친환경 공장으로 계획했지만, 곳간이 비면서 공사 재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친환경 사업에 발을 빼기는 SK지오센트릭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울산에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 공장을 지으려던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프랑스 생타볼 지역에 해외 공장을 세우려던 계획도 접었다. 친환경 화학 소재 사업을 확대한 GS칼텍스 역시 전남 여수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공장 투자를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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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DL 갈등 격화…여천NCC 추징금 놓고 "네 탓"
자금난을 겪는 여천NCC를 놓고 지분을 50%씩 보유한 공동 대주주 한화와 DL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3000억원 규모 자금 대여를 두고 반목하던 두 그룹은 이번엔 여천NCC의 1000억원대 국세청 추징금으로 맞붙었다. 두 그룹의 자금 지원 결정으로 여천NCC는 부도 위기를 넘겼지만, 부실 책임과 원료 공급 계약을 둘러싼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한화는 12일 ‘여천NCC 세무조사 결과 및 원료 공급에 대한 추가 설명자료’를 내고 “여천NCC는 올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DL에 에틸렌과 C4RF1(합성고무 원료) 등을 시가보다 싸게 공급했다는 이유로 1006억원을 추징당했다”고 밝혔다.국세청은 여천NCC가 주주사에 원료를 싸게 넘겼다는 이유로 지난 2월 추징금 1006억원을 부과했다. 이 중 95.6%는 DL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로 인한 추징금(962억원)이었다. 한화와의 거래로 물린 추징금은 44억원(4.4%)이었다.DL은 반발하고 있다. DL케미칼 관계자는 “에틸렌은 용도별로 공급가가 다르게 책정되는 만큼 DL 공급가가 한화보다 낮을 수 있다”며 “에틸렌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C4RF1은 시가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여천NCC는 과세 처분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낼 계획이다.두 그룹의 갈등은 여천NCC와의 원료 공급 재계약으로 확산하고 있다. DL, 한화가 각각 여천NCC와 맺은 원료 공급 계약이 지난해 12월 만료돼 재계약 단가를 산정해야 하는데, 두 그룹이 이견을 보이고 있어서다. DL은 여천NCC 실적이 개선될 때까지 두 그룹 모두 하한가를 설정하는 식으로 공급단가를 높이는 동시에 장기 계약을 맺자고 주장한다. 한화는 여천NCC의 DL 공급단가가 낮았던 데다 에틸렌 시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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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읍 상가 절반 '임대딱지'…여수 배관업체는 "올해 주문 0건"
지난 8일 퇴근시간에 찾은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 인근 먹자골목에서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직장인을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적자에 내몰린 기업들이 회식을 줄인 데다 상여금이 사라지면서 근로자의 주머니가 홀쭉해진 탓이다.석유화학산업의 위기는 먹자골목에 터를 잡은 점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집 걸러 하나씩 ‘임대 문의’ 팻말이 걸렸기 때문이다. “권리금도 없고, 관리비도 안 받습니다” “계약하면 석 달치 임차료 빼줍니다”는 이곳에선 흔한 임대 조건이다. 정구영 대산읍상인회장은 “3~4년 전만 해도 식당마다 직장인으로 가득 찼는데 그런 호시절은 다시 올 것 같지 않다”며 “그렇다 보니 많은 상인이 대산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 무너지는 지역 경제석유화학 불황은 산단이 들어선 지역 경제부터 망가뜨렸다.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여천NCC 등 한때 조(兆) 단위 수익을 내던 대기업이 적자의 늪에 빠진 탓이다. ‘낙수효과’가 사라지니 이들에 기대온 지역 상권과 하청업체들이 폐업과 도산 위기에 몰린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무너진 지역경제는 상가 공실률에 그대로 드러난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GS칼텍스와 여천NCC 등이 있는 전남 여수 도심의 상가 공실률은 작년 2분기 12.0%에서 올 2분기 35.1%로 세 배 가까이로 상승했다. 여수 도심 상가의 3분의 1 이상이 비었다는 얘기다.석유화학업체들이 건넨 일감으로 생계를 꾸리던 하청업체들의 위기감은 더하다. 대부분 시설 운영·보수, 소재·부품 공급, 운송 업체인데 일감 자체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일부 업무는 대기업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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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업계 인력 감축해야 사는데…노조는 파업 예고
정부와 업계 의뢰로 석유화학 재편 컨설팅을 맡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국내 석유화학 생산시설의 25%가량을 줄여야 공멸을 막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지만 실행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생산시설 감축은 필연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본지 8월 11일자 A1, 3면 참조11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전남 여수, 울산, 충남 대산 등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의 생산시설을 통폐합 방식으로 4분의 1가량 폐쇄하면 인력 감축은 생산시설 축소 규모보다 많은 30% 이상이 될 것으로 관측됐다. 생산라인 근로자뿐 아니라 공장별로 비슷한 업무를 하는 인력도 감축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각각의 공장에 배치된 발전, 품질 관리, 물류 업무 등이 하나로 합쳐지는 만큼 필요 인력이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인력을 현 상태로 유지하면 통폐합을 통한 생산시설 감축 효과가 반감되는 만큼 상당한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하지만 당장 인력 감축에 나선 기업은 없다.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 해고 회피 노력, 공정한 해고 기준 등을 인정받지 못하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 규정 때문이다. 여천NCC 롯데케미칼 등 상당수 석유화학기업이 적자를 냈지만 현재로선 이 규정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가동을 중단한 공장 근로자를 다른 곳으로 전환 배치하는 데 그치고 있다.3대 석유화학단지에 있는 기업 노조들은 벌써 인력 감축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화학 노조가 파업 등 실력행사에 들어가면 플랜트건설노조 등 연관 노조도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성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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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된다"…태광·효성, 석화 비중 줄이고 신사업 모색
석유화학 기업들은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자체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태광, 효성, HS효성 등은 수익이 줄어드는 석화사업 비중을 줄이고 신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10일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울산 석유화학 2공장에 있는 프로필렌 공장과 저융점섬유(LMF)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몇몇 나일론 생산 공장과 중국 스판덱스 공장 운영도 중단할 계획이다. 태광산업은 기존 석화사업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본업’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화장품, 에너지, 부동산 개발 등 신사업에 자금과 인력을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태광산업은 일단 올해와 내년에 신사업에 1조5000억원가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애경산업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애경산업을 통해 화장품 사업에 본격 나선다는 계획이다.효성화학도 실적이 악화한 석화산업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테레프탈산(TPA) 생산을 중단하고 TAC 필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비주력 부문을 정리한 뒤 신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HS효성첨단소재는 타이어스틸코드 사업부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매각 자금은 신소재 및 배터리 소재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다. HS효성첨단소재는 전주 공장의 탄소섬유 제품 ‘탄섬’의 공장 생산 규모를 연 6500t에서 9000t으로 증설했다. 2028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탄소섬유는 기존 제품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더 높은 탄소 기반 신소재다. HS효성첨단소재는 울산 아라미드 공장 생산능력도 연간 3700t으로 증설해 고압용기·수소탱크·방위산업·케이블용 등 고부가가치 산업재 비중을 키우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기초 석유화학 제품 비중이 크지 않은 석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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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 사이클 더는 안 온다…여수 에틸렌 공장 2~3개 정리해야"
10일 찾은 울산 용연동 효성화학 고순도 테레프탈산(TPA) 공장엔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올 1분기만 해도 직원 100여 명이 타이어코드 등에 들어가는 페트(PET)의 원료인 TPA를 제조했지만 누적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2분기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효성화학은 TPA 국내 공급량(430만t)이 수요(222만t)를 압도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이 공장을 스크랩하기로 했다. 울산 산업단지 관계자는 “울산산단에서만 수십 개 공장 가동 중단이나 통폐합을 준비하고 있다”며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멈춰 선 3대 산단여수, 울산, 대산(충남) 등 국내 3대 석화단지의 엔진이 꺼지고 있다. 세계 최대 석화제품 수입국이던 중국이 자체 생산 능력을 대폭 키운 데다 국내 업체들의 증설이 맞물려 공급 과잉 구조가 고착화한 탓이다. 기초 원료인 에틸렌뿐 아니라 ‘캐시카우’였던 폴리프로필렌(PP)과 TPA, 폴리에틸렌(PE) 등 범용 석화제품도 비슷한 상황이다.이날 업계에 따르면 울산산단에서만 지난해부터 총 10개 공장이 문을 닫거나 가동을 멈췄다. 효성화학은 TPA 공장뿐 아니라 최근 프로판탈수소화(PDH) 공장 한 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효성화학의 지난 1분기 가동률은 57.8%로 지난해 76.6%에서 1년 만에 급락했다. 롯데케미칼은 각각 두 곳의 PET와 고순도이소프탈산(PIA)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태광산업과 SK지오센트릭, 한국카프로락탐 등도 가동 중단에 동참했다.국내 최대 산단인 여수산단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8일 여천NCC가 에틸렌 3공장을 세웠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도 각각 스티렌모노머(SM) 공장 등 일부 생산 라인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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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석화단지 전기료 감면을"…李대통령에 손편지
이완섭 서산시장이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로 코너에 몰린 대산석유화학산업단지를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해달라는 내용의 손편지(사진)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냈다. 충남 서산시는 이와 별도로 전기료를 깎아달라는 요청도 정부에 전달했다.21일 서산시에 따르면 이 시장은 편지를 통해 “계속된 위기로 170여 개 석화기업과 90여 개 협력사가 입주한 대산단지의 설비가 멈춰섰고, 투자는 중단됐으며, 시민의 일터와 삶은 위태로워졌다”며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 지정은 서산을 넘어 대한민국 주요 산업을 지켜내는 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시장은 손편지를 국회의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에게도 전달했다.정부는 권역 내 주요 산업 생산액 등이 크게 떨어진 지역을 2~5년간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중소기업·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지원, 고용 안정 지원, 실직자 지원, 금융 지원 등을 해준다. 경제·산업 분야의 ‘특별재난지역’인 셈이다. 충청남도와 서산시는 지난 18일 산업부에 대산단지를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다.충청남도와 서산시는 전기료 인하도 함께 요청했다.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돼도 전기료 인하 혜택은 없기 때문이다. 서산시는 석화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지역경제도 살리려면 전기료 인하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된 전남 여수 석화단지도 정부에 전기료 10% 인하를 요청했다.국내 산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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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 부자 도시될 것"이라던 여수…지금은 돈도, 사람도 떠났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는 2015년 “여수가 10년 내 세계 10위 부자 도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예측치를 기준으로 세계 10대 부자 도시 후보군을 선정한 결과다. 전남 여수는 노르웨이 오슬로와 카타르 도하, 중국 마카오 등에 이어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동아시아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업단지의 발전 가능성과 여수 엑스포 개최 등 인지도 상승이 근거였다.현재 여수는 10년 전 ‘장밋빛 전망’과는 딴판의 도시가 됐다. 2021년 여수에서 걷힌 5조7000억원의 국세는 지난해 3조원대 초반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여수국가산단 입주 기업들의 실적이 고꾸라진 탓이다. 대기업이 휘청이니 납품하던 중소기업과 지역 상인의 세수도 줄었다. 소득이 감소하자 2015년 29만 명을 넘어 30만 명 진입을 눈앞에 둔 여수 인구는 26만 명으로 주저앉았다.정부와 전라남도, 여수시가 함께 모여 지난해 하반기 지원책 논의를 시작한 이유다. 여수상공회의소 등 지역 산업계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책 마련을 촉구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여수를 지난 5월부터 2027년 4월까지 2년간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여수시도 민생 회복 명목으로 957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지역 산업계에선 지원안의 실효성을 두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정부가 집중 지원하기로 한 친환경 석유화학 설비 도입과 그린수소, 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은 초기 투자 비용이 큰 데다 단기간 수익을 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일수록 신사업 전환에 어려움이 크다. 정부가 설정한 2년 기한 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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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4년 새 73% 폭등…석화업계 "더 버틸 힘 없다"
“차라리 태풍이 나은 것 아니냐고들 합니다. 석유화학으로 먹고사는데, 그 산업이 붕괴 위기에 몰렸으니….”지난 16일 전남 여수 산학융합원 빌딩에서 열린 ‘석유화학 위기대응 협의체’ 회의에 참석한 사람에게 회의장 분위기를 물었더니 이런 답을 들려줬다. 전라남도와 여수시 공무원, 여수 석화단지 입주기업 공장장, 관련 기업 노조 대표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위기’ ‘재난’ ‘생존 위협’을 쏟아냈다고 한다.과장이 아니다. 전남 제조업 생산액의 65%, 전남 세수의 60%를 차지하는 여수산업단지가 중국발(發) 공급 과잉에 휘청이고 있어서다. 직간접 고용 인원이 전남 인구(178만 명)의 11% 이상을 차지하는 여수산단이 흔들리면서 전남의 실업자는 2023년 말 3만2000명에서 지난해 말 6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전남지사가 직접 정부에 전기료 10% 인하를 요구한 배경이다. ◇여수산단 생산액 10% 넘게 감소20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전라남도는 이달 국정기획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회를 찾아 정부가 지정하는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의 지원 대책에 전기료 인하를 포함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권역 내 주요 산업 생산액 등이 크게 떨어진 지역을 2~5년간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해 대출 확대, 국세 납부기한 연장,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실직자 지원 프로그램 운영 사업 등을 한다. 경제·산업 분야의 ‘특별재난지역’ 선포 제도인 셈이다. 지난 5월 지정된 여수에 이어 똑같은 위기에 몰린 울산 및 충남 대산 석화단지도 연내 지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에 전기료 인하는 포함돼 있지 않다.매출 기준 국내 4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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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골든타임' …새 정부서 급물살타나
석유화학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설비 통폐합 논의에 착수하면서 정부의 구조조정 지원 작업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주도 구조조정도 거론하고 있어 업계 예상보다 큰 폭의 산업 재편이 이뤄질지 주목된다.11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후속 대책을 최근 관계 부처와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는 대통령실에 보고한 후 최종안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자부 관계자는 “기업들과 설비 합리화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면서 정부가 어떤 식으로 추가 지원을 할지에 대한 의견도 충분히 수렴했다”며 “새 정부와 조율작업도 속도감 있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그간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지연된 주된 원인은 지난해 말 탄핵 정국 이후 정부의 정책 결정 라인이 멈춰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일부 기업들이 정부 주도 구조조정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도 정부가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어려운 이유로 분석됐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롯데케미칼·HD현대그룹을 중심으로 민간 차원의 자율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정부의 후속 정책도 곧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산업부 차관 등 관련 인사도 마무리됐다.정부는 앞서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에서 설비 통폐합으로 지역경제의 어려움이 예상될 땐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협력 업체에 지원하는 고용 유지지원금 매출 요건을 완화하는 등의 방안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이재명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석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