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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PEF 투자할 돈이 사라졌답니다.” [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1. 국민연금은 이달 신규 선정 예정인 국내 사모펀드(PEF) 위탁운용사에 맡길 자금 규모를 5000억원으로 공고했다. 2021년 6000억원에서 17% 줄였다.#2. 배터리업체 SK온은 올해 초부터 4조원 규모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작업에 들어갔으나 자금모집이 늦어지고 있다. 당장 필요한 돈은 지난달 단기 차입으로 충당했다.국내 PEF 운용사들이 신규 자금모집(fundraising)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상장 주식·채권에서 큰 손실을 본 기관이 사모 주식 투자 확대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서다. 글로벌 시장에선 자금모집 차질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급증하던 국내 출자금액도 역성장 우려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펀딩 전년비 40% 급감“기관이 PEF 내줄 돈이 없다고 합니다. 최근 펀드레이징(자금모집) 기간의 장기화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국내 한 PEF 운용사 대표는 “사모주식의 고평가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상장 주식 가격이 큰 조정을 겪은 탓”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PE 가치도 결국엔 상장 증권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 주식·채권값 하락의 반대급부로 커진 대체투자 비중 등이 신규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해석했다.8일 대체투자시장 조사업체인 프레퀸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기관의 PE 투자 의욕을 반영하는 ‘펀드 모집 완료까지의 기간’은 지난 1분기 눈에 띄게 길어졌다. 투자 수요가 많은 경우에 속하는 ‘6개월 이내 자금모집을 완료’ 펀드가 올해 1분기 동안 전체의 9%에 그쳤다. 작년까지 5년 동안 평균 29%였던 것과 비교해 급격한 감소다.모집자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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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리츠’ vs 한국의 ‘루나’ [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테마섹(싱가포르 정부 소유 투자회사)이 스폰서 역할까지 도맡았죠.”최근 한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업계 임원이 미팅 중 꺼낸 얘기다. 아시아 2위 규모인 싱가포르 리츠 산업의 고성장 배경을 설명하면서다. 안정적인 금융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리츠 산업의 성장에 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싱가포르리츠협회(REITAS)에 따르면 2021년 말 현재 상장 리츠(S-REIT) 시가총액은 48개 860억달러(106조원)에 달한다. 전체 시가총액의 13% 규모다. 일본(1580억달러)을 빼면 아시아에서 2위 규모를 자랑한다.국민 노후자산 증식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싱가포르 상장 리츠 수익을 추종하는 i엣지 지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투자자에게 배당금을 포함해 돌려준 수익이 연 7.5%에 달한다. 해외 자산을 보유한 리츠의 시가총액이 전체의 87%로 상품 구성도 다양하다.한국 시장은 부산보다도 작은 싱가포르와 비교할 때 부끄러운 수준이다. 리츠의 출발점은 2001년 ‘부동산투자회사법’을 제정으로 싱가포르(2002년)와 비슷했지만, 상장 리츠 규모는 지난 4월 말 현재 19개 약 9조원으로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이처럼 커다란 격차를 만들어낸 주체는 정부다. 싱가포르 정부는 초기부터 리츠의 주요 투자자(스폰서)로 참여해 투자자에게 신뢰감을 주는 데 주력했다. 테마섹홀딩스와 같은 정부 소유 기관뿐만 아니라 공기업과 국부펀드까지 다양한 제도와 세제 혜택으로 활성화를 뒷받침했다.반면 한국은 2011년부터 장기간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다산리츠의 배임 사건, 골든나래리츠의 주가 조작, 삼우리츠의 가장 납입 등이 연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유관 기관의 감시 소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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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투자 큰손’ 공제회는 왜 주식 전문 CIO를 뽑나 [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국내 주요 공제회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대부분이 취임 전 대체투자 분야에서 충분한 실무 경험을 갖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투자 전문가 영입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지만, 실무 능력까지 갖춘 인력 품귀로 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CIO의 짧은 임기까지 고려하면 장기 고수익 전략에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18일 운용자산 5조원 이상 국내 6개 주요 공제회 CIO 약력을 보면, 투자총괄업무를 맡기 전에 대체투자 실무팀장으로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는 박만수 한국교직원공제회 기금운용총괄이사와 박양래 과학기술인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 정도에 그친다.둘 다 올해 내부 승진한 인물로 공제회 내 대체투자 부문의 위상을 반영했다. 교직원공제회의 박 이사는 대체투자부 부동산투자팀장, 대체투자부장 등을 역임한 뒤 올해 1월 약 50조원 규모 자산운용을 총괄하는 기금운용총괄이사로 영전했다. 약 9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과학기술인공제회 박양래 자산운용본부장은 앞서 부동산, 인프라 등에 투자하는 실물투자실장을 지냈다. 2018년부터 리스크관리센터장을 지내다가 지난달 승진했다.반면 대한지방행정공제회(운용자산 약 19조원), 노란우산공제회(21조원), 군인공제회(14조원), 과학기술공제회(9조원), 경찰공제회(5조원) CIO는 주식이나 채권 운용 관련 실무 능력에서 뛰어난 전문성을 인정받아 외부 영입한 인물이다.올해 2월 취임한 허장 행정공제회 사업이사의 경우 푸르덴셜자산운용(현 한화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출신으로 대표적인 주식 투자 전문가로 꼽힌다. 동부화재(현 DB손해보험)에서 투자사업을 총괄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문 영역을 넓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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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유동성이 효자? ‘리츠 질주’의 또 다른 해석 [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탄탄한 리츠(부동산투자회사·REITs) 주가는 어쩌면 시장 위험을 즉각 즉각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한 부동산 금융회사 임원)국내 상장 리츠가 최근 주가 급락에도 되레 강세를 나타내 관심을 끌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리츠인프라·우선주 혼합지수’는 이날 1910.85로 마감했다. 전체 구성 종목의 70%를 리츠로 설계한 이 지수는 이날까지 5거래일 동안 0.13% 상승했다. 코스피 지수가 2639.06으로 같은 기간 2.93% 급락한 것과 대조적인 흐름이다.NC백화점 야탑점 등을 보유한 이리츠코크렙은 이날까지 7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여의도 하나금융투자빌딩(사진)을 보유한 코람코더원리츠는 5거래일 연속 상승을 마치고 이날 보합으로 마감했다. 지난 3월 28일 주당 5000원에 상장한 코람코더원리츠는 7거래일 만에 6000원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몇몇 전문가들은 미국 등 다른 선진국과 달리 한국 상장 리츠가 선전하는 배경으로 특유의 ‘낮은 거래 유동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 금리의 가파른 상승기 대규모 차입금을 활용하는 리츠 주가의 강세를 자연스럽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미국 리츠 시장의 대표 지표로 꼽히는 MSCI US REIT 지수는 전날까지 5거래일 동안 4.2% 급락했다.한 부동산 전문 운용사 임원은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리츠가 ‘인플레이션 피난처’로서 매력을 지닌 것도 사실이지만, 금리 상승기엔 주가가 내리는 게 상식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이긴 한데 상품 수가 적고, 다른 종목보다 유동성도 떨어지다 보니 국내 리츠와 주식시장 간 상관관계가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국내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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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미래에셋 IFC 인수戰…고민 깊어진 연기금·공제회 [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값이 너무 올라 주요 연기금도 참여에 부담을 느낄 겁니다.”(부동산 자산운용사 관계자)“4조5000억원 이상에 팔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금융권 관계자)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매각을 둘러싸고 금융산업이 시끄럽다. 작년 말부터 오피스 3개 동과 콘래드호텔(사진)을 통으로 내놨는데 예상 매각 가격이 너무 올라버려서다. 지난달 2차 입찰 이후 알려진 예상 가격은 4조4000억원에 달한다. 토지 소유권 없이 임차권만 가져가는 거래인데도 오피스빌딩 거래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가격 상승을 이끄는 인수 후보는 두 곳이다. 하나는 신세계프라퍼티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이지스자산운용, 다른 하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다. 부동산 펀드 설정 금액 기준 국내 1위와 2위 자산운용사다. ‘초대박’을 눈앞에 둔 매각 주체인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 측은 경쟁을 부추기느라 혈안이다. 지난 15일엔 부동산 매각 관행상 유례를 찾기 힘든 3차 입찰까지 받았다. 브룩필드가 2016년 IFC를 사들일 때 지불한 돈은 현재 예상 가격의 절반 수준인 2조5500억원이다.매각 측의 불투명한 입찰 절차, 비상식적으로 비싼 가격 우려에도 두 자산운용사는 매수 의지는 여전히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랜드마크 거래를 통해 부동산 금융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 일각에선 운용사 개인 오너가 있어야 가능한 대담한 입찰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입찰 초기 참여했던 싱가포르계 투자회사 ARA코리아자산운용을 비롯해 마스턴투자운용, 코람코자산신탁 등은 뜻밖의 과열 분위기에 발을 빼야 했다.문제는 지나친 경쟁이 최종적으로 국민 노후 자금을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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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카뱅’과 ‘배그’는 왜 지금 상장하나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와 ‘배틀그라운드’ 게임으로 유명한 크래프톤이 기업공개(IPO) 작업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지난 23일 카카오뱅크는 이사회를 열어 주관사 선정 절차에 나서기로 결의했고, 크래프톤도 최근 주관사 선정 작업을 개시했습니다.두 회사의 기업가치는 그동안 누가, 언제 평가하느냐에 고무줄처럼 변해왔는데요. 적어도 각각 수조원대 이상으로 평가받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대어’로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증권가에선 일찍이 IPO 주관 업무에 공을 들여왔지만 지난 수년 동안에는 진척을 보지 못했죠.IPO 의향을 가지고 있었던 두 회사의 중요한 고민 중 하나는 ‘언제 상장해야 가장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가’였을 텐데요. 그런 관점에서 공교롭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를 최적의 타이밍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인터넷과 게임 등 이른바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업종의 이익 대비 기업가치가 급상승했기 때문입니다.지난 7월 상장한 SK바이오팜과 8월 상장한 카카오게임즈가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60% 폭등한 사례는 ‘지금’이라는 믿음을 더욱 굳어지게 했을 겁니다. 기업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든 주식을 보유하려는 대기수요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요. 선발사 임직원들이 상장 직후 수억, 수십억원의 평가차익을 올렸다는 소식도 마음을 조급하게 했을 것이고요.그런데 기업이 선택한 훌륭한 IPO 시기가 거꾸로 투자자 관점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합니다. 그만큼 공모가가 비싸져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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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IPO ‘대어’의 흥행 조건
공모금액 수천억원대 ‘대어(大漁)’의 대박 행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상장한 SK바이오팜에 이어 이달 카카오게임즈 공모주가 상장 첫날 가장 높은 160% 수익을 달성했고, 다음 달엔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가 바통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옵니다.이런 현상은 ‘SK바이오팜 대박’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던 미국에서도 나타나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요. 클라우드업체 스노우플레이크의 경우 지난 16일 뉴욕증시 상장과 동시에 공모가 대비 112% 급등하면서 공모주 고평가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기업가치가 약 80조원으로 불과 7개월 전 평가 당시와 비교해 다섯 배나 뛰었거든요.공모주의 가장 큰 매력은 대량의 주식을 주관사가 매긴 평가가치 대비 5~30% 정도 할인해 판매한다는 점인데요. 최근 과열 현상은 이 단기차익을 취하려는 투자 자금의 급증에서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주요국 금리를 크게 끌어내리면서 세계적으로 동원 가능한 현금, 즉 유동성이 풍부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풍부한 총알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공모주라면 무차별하게 몰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청약 경쟁률 수백 대 1의 ‘평범한’ 종목이 종종 나오고, 상장 첫날 공모가액보다 크게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종목도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죠. 할인율을 적용한 가격이라 할지라도 어떤 공모주는 청약자들의 매물을 받아줄 만큼 충분한 매수 수요가 붙지 않았다는 뜻입니다.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대어의 흥행 조건을 갈수록 심해지는 ‘성장주 갈증’과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성장주 가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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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때이른 항공업 승자독식의 꿈
≪이 기사는 09월16일(15:06)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최악의 영업환경에서 버티고 있는 항공산업이 ‘승자독식’ 체제로 재편 철차를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풍파에 맞서 살아남은 소수 항공사의 경우 기업가치가 크게 오르는 시점을 맞이할 것이란 기대입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대한항공을 그 가능성을 지닌 기업으로 꼽았는데요. 유상증자 등 선제적인 유동성 확보와 화물업황 호조 덕에 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보고서 제목인 ‘The winner takes it all’ 잠재력을 반영해 목표주가도 기존 2만1000원에서 2만4000원으로 올려잡았습니다.아마도 많은 대한항공 주식 투자자들이 현재 이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덕분에 대한항공은 지난 7월 유상증자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1조127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주가도 15일 기준 1만8650원으로 이달 들어 5% 넘게 상승했습니다.하지만 보수적인 채권 투자자들의 관점은 여전히 회의적어서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한국기업평가는 대한한공 신용등급을 ‘BBB+’(부정적검토)로 평가하고 있는데요. 등급에 붙은 ‘부정적 검토’란 수개월 안에 신용등급이 ‘BBB’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한국기업평가는 대규모 유상증자 성공 이후에도 이 꼬리표를 떼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주식 투자자에게도 적지 않은 위험 부담을 요구합니다. 신용등급이 추가로 떨어지면 단순히 이자비용만 오르는 게 아니라, 차입 자체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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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비대칭’ 회사채시장 지원의 한계
“재난지원금은 구제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그는 “생계나 실업에 대한 근심없이 ‘우리 회사는 이번주 재택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평안한 위치에 있는지…”라는 표현도 썼는데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공무원과 공기업, 대기업 직장인을 지칭한 듯합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대변한 윤 의원의 해당 발언은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 지원 정책에도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와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가동 등 전례없는 대규모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많은 혜택이 대기업 중심의 회사채시장에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정부 지원에 힘입어 회사채시장은 지난 6월부터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국내 중소기업은 이 시장을 활용해 자금난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 중심의 비대칭 성장 과정에서 참여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심해져 강소기업으로 불리는 중견기업조차 단지 ‘규모의 차이’ 탓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그러다보니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은 주로 은행을 우회하는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요.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지급 연기가 대표적이죠. 그 결과 예금은행의 중소기업(소상공인 포함) 원화대출은 올해 1~7월 무려 60조원이나 순증했습니다.은행을 통한 자금 공급도 큰 도움을 줄 테지만, 문제는 회사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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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드림株 부상이 불편한 닷컴버블 세대
“어휴~ 다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최근 여의도 증권사 임원들을 만나면 종종 듣는 말입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 직후 공모가의 네 배 이상으로 급등한 SK바이오팜과 시가총액 3위로 떠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자동차보다 비싸진 카카오 등 ‘드림(dream) 주’를 이야기하면서입니다. ‘고성장의 꿈’ 말고는 최근 두 달 동안의 기업가치 급등을 달리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동학 개미’란 별칭을 얻은 많은 용감한 개인투자자는 순이익에 기반한 PER(price earning ratio)과 같은 옛 기업가치 평가 방식에 집착하지 않는 듯합니다. 일부는 꿈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PDR(price to dream ratio)로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그럼에도 증권사 대부분은 여전히 드림주의 추가적인 상승 동력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분위기입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2일 주당 80만원을 돌파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목표주가는 지난 4월 66만원에서 멈춰 있습니다. SK바이오팜 목표주가는 상장 직전에 제시한 11만원이 마지막입니다. 최근 거래가격의 절반 수준입니다.증권사들이 더 공격적으로 목표주가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1999년부터 2000년 초 정점을 찍은 닷컴버블의 기억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보기술(IT) 버블 또는 인터넷 버블로도 불리는 당시 코스닥시장의 폭등은 수많은 투자자에게 짧은 환희와 긴 고통을 안겼습니다.지금처럼 저금리가 촉발했던 코스닥시장의 급등은 1999년 봄에 시작해 2000년 3월 정점을 찍었습니다. 코스닥지수는 지금의 세 배를 웃도는 2834.40까지 치솟았습니다. 기업가치 평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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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현대산업개발 회사채 꺼린 기관의 ‘트라우마’
국내 시공능력 9위 건설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회사채 투자 수요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모두 3000억원어치를 발행하려 지난 6일 수요예측을 했는데요. 이튿날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최종 참여금액이 110억원에 그쳤습니다. 평가금리(민평금리)에 최고 1.20%포인트(5년물 기준)를 더 지급할 의사를 밝혔음에도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청약 미달의 핵심 배경은 자산규모 두 배를 웃도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우려로 보입니다. 앞서 현대산업개발은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 모두 네 차례 회사채를 발행했는데요. 모두 수요 초과(오버부킹) 성적을 거둘 만큼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기관의 보수화 영향도 있지만, 지난달 23일 발행한 SK건설 회사채가 오버부킹을 달성한 점을 감안하면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기관의 우려는 과거 안 좋은 기억 탓이 큽니다. 강력한 ‘트라우마’ 중 다수는 경기가 좋았던 2006년에 발생했는데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두산그룹의 두산밥캣 인수가 대표적입니다. 이들 기업의 과감한 결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두 ‘승자의 저주’로 변해버립니다. 이후 신용등급이 내려가면서 채권 투자자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겼습니다.이런 우려를 반영해 HDC현대산업개발은 증권신고서 투자위험 항목에 ‘아시아나항공’을 70여 차례나 언급해야 했습니다. “열위한 수준인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위험이 당사에 일부 전이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주택건설업 호황에 힘입어 2017년 ‘A+’로 올랐던 신용등급에도 현재 이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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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집값 상승에 주택건설업만 ‘호황’
정부가 부동산 가격의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는데요. 강남 아파트를 보유한 자산가보다 더 표정 관리에 애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종 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0여년 만에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대형 주택건설사 오너들입니다.단적인 예로 비상장사인 반도홀딩스는 2017년 이후 3개년 동안 무려 1조3082억원의 누적 연결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직전 3개년 6473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이익입니다. 반도건설 등을 거느린 반도홀딩스 지분은 권홍사 회장 일가가 99.7%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급증한 이익의 일부는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한진칼 지분 매입 재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같은 비상장사인 호반건설과 한양은 같은 기간 누적 영업이익이 각각 9209억원, 3524억원으로 불어났는데요. 수익성 개선에 탄력을 받아 현재 증권사들과 기업공개(IPO)를 협의 중입니다. 호반건설 지분의 92.8%는 김상열 회장과 특수관계인 소유입니다. 한양의 지분도 이기승 회장의 투자회사 등이 대부분 보유하고 있습니다.상장사인 태영건설과 한신공영 역시 작년까지 3개년 누적 영업이익으로 각각 1조1658억원과 4723억원을 벌어들였습니다. 유명 브랜드 아파트를 짓는 대림산업, GS건설, 롯데건설, 한화건설, 포스코건설도 재무제표가 크게 건실해졌고요. 신용등급을 보유한 이들 일곱 개 건설사는 모두 2019년 이후 ‘신용등급 상향’이라는 큰 기쁨을 맛봤습니다.자체사업의 강자 현대산업개발은 2017년 한 해 646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요. 그 덕에 같은 해 신용등급을 ‘A+’로 올려받고,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작년 건설업만큼 신용이 좋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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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SK바이오팜 ‘로또’ vs 정크본드 ‘신음’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SK바이오팜 주식을 사려고 1조원대 매수대기 물량을 쌓아둔 투자자들은 회사의 내용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상당수는 회사가 무슨 일을 하든 관심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고성장 잠재력을 지닌 주식이라면 뭉칫돈이 끊임없이 몰리는 분위기에 올라타는 게 목적이라면 말입니다.많은 투자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출렁이는 시장에서 인생을 바꿀 ‘로또’를 찾는 데 혈안인 것 같습니다. SK바이오팜은 올해 1분기에만 65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지난 3월 말까지 완전자본잠식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에게 그런 숫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서 다수의 유명 바이오주가 공모가의 몇 배씩 오르며 거듭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로 낮추면서 더 많은 대출을 자극하고 있으니까요.그런데 자산시장 곳곳에 나타는 거품의 신호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 미국의 고위험 회사채시장에선 기록적인 매물이 쏟아졌는데요. 최근 채권 값이 많이 올랐던 만큼 이익실현 차원도 있겠지만, 실물경기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두려움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고수익채권은 경기에 가장 민감한 시장입니다. 말하자면 꿈을 먹고 자라는 일부 자산의 가격, 그리고 실물경기 악화 우려가 동시에 높아지는 혼란스러운 상황인 셈입니다.시장정보업체 리피티브리퍼에 따르면 미국 고수익(High-yield) 채권시장에선 지난 1일까지 1주일 동안 55억5000만달러(약 6조6000억원)가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네 번째로 큰 주간 자금유출로, 지난주 유출금액 약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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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SK바이오팜 공모주 배정 공정했나 ‘시끌’
“곧바로 주식을 팔 수 있는 해외 기관에 물량을 너무 많이 배정했다.”“특정 해외 사모펀드(PEF)에 물량을 몰아줬다는 소문이 돈다.” 무려 31조원의 일반청약 증거금을 모은 SK바이오팜의 공모주 배정을 둘러싸고 금융투자업계가 시끄럽습니다. 공동대표주관 증권사인 NH투자증권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이 ‘해외 기관에 수익 기회를 불공정하게 많이 몰아준 게 아니냐’는 의혹에서입니다.각종 의혹은 국내 금융회사의 공모주 배정 물량이 기대에 못 미친 데 따른 불만에서 출발했습니다. 장기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내걸며 적극적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손에 들어온 주식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SK바이오팜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기관의 수요예측 참여물량 가운데 79억6644만주, 전체의 무려 81.15%가 보름 이상 보유를 약속했는데요. 최종적으로 이들 의무보유 확약 기관이 배정받은 주식수는 전체 기관 물량의 52.25%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47.75%는 상장 직후 주식을 팔 수 있는 미확약 기관에 돌아갔습니다. 이중 대부분은 해외 금융회사로 추정됩니다. 기관의 한 해 공모주 농사를 좌우하는 5000억원어치 이상 주식 공모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에 적은데요. 그런 희소한 투자 기회를 외국 회사에, 그것도 ‘언제든 팔 수 있는’ 좋은 조건으로 제공했다는 사실을 달가워 할 기관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문제는 이런 기관의 불만이 공정성 의혹으로 확산할 만큼 외국인 배정 절차를 둘러싼 시장의 신뢰가 두텁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 모범기준에 따르면 대표주관사는 ‘자율적으로’ 공모주 배정물량을 결정할 수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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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의 캐피털마켓 워치] ‘2차 팬데믹 공포’ 그 다음은
지난 19일 ‘코스피 200 변동성 지수(V-KOSPI 200)’는 34.04로 마감했습니다. 장중 꾸준히 낙폭을 키우면서 전날보다 3.26포인트(-8.74%) 급락했습니다. 이 지표는 코스피 200 옵션 가격에 기초해 앞으로 30일 동안 투자자들의 지수변동 기대값을 반영해 ‘공포 지수’로 불립니다.V-KOSPI는 지난 3월 중순 정점을 찍은 뒤 가파르게 하락했는데요. 그러다 이달 15일까지 3거래일 동안 반짝 반등을 나타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2차 확산과 북한의 도발 우려로 코스피가 크게 흔들리던 때입니다. 하지만 이후 다시 방향을 아래로 꺾으면서 수그러드는 ‘공포’를 반영했습니다.이날 ‘2차 팬데믹 공포’를 밀어낸 주체는 예상보다 양호한 경기 전망입니다. 미국의 5월 소매판매 실적이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고,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 의장은 추가적인 부양 정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주요국 정부의 지속적인 ‘돈 풀기’ 와중에 나온 긍정적 지표를 접한 파생상품 투자자들은 코스피지수가 당분간 낮은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는 데 베팅한 듯합니다.누구도 앞으로 코로나19가 가져올 세상의 변화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공포의 진정 흐름이 지속되는 때가 온다면, 안전자산에 쏠렸던 대규모 자금의 되돌림 현상을 가져올 텐데요. 그래서 최근 채권 투자자들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고채 금리 가파른 상승 전환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입니다.일각에선 벌써부터 급격한 금리 반등을 뜻하는 ‘탠트럼(Tantrum·발작)’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2013년 미 중앙은행 의장의 자산 매입 축소 계획 발표를 계기로 금리가 급등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