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02일 14:40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M&A 시장 최대어 중 하나로 거론되는 한온시스템 매각이 본격화되고 있다. 오랜만에 나온 조단위 '경영권 매각'이란 점에서 국내외 대형 PEF들은 벌써부터 매물 분석에 돌입한 상태다. 그러나 '10조원'에 육박하는 덩치 때문에 쉽게 엄두를 내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온시스템의 매각 주관사 모건스탠리는 복수의 글로벌 PEF운용사와 국내외 대기업 등 전략적투자자(SI)에 접촉해 사전마케팅 절차에 나섰다. 티저레터 배포 등 거래 공식 절차 이전 잠재 수요를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한온시스템은 국내 M&A 시장 내 최대어로 꼽혀왔지만 인수자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이어져왔다. '전기차'·'그린 뉴딜' 테마를 타고 이미 시가총액만 9조원을 훌쩍 넘게 커졌기 때문이다.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드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한온시스템이 매물로 나왔다. /한온시스템 홈페이지.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드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한온시스템이 매물로 나왔다. /한온시스템 홈페이지.
그럼에도 주요 글로벌 PEF들은 "검토를 안할 순 없다"란 분위기다. 오랜만에 등장한 경영권이 수반된 거래인만큼 펀드 자금을 소진하기 위해서라도 검토는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베이코리아·요기요 등 유형자산이 뚜렷히 없는 플랫폼 기업들과 달리 한온시스템은 매년 수천억원의 현금이 안정적으로 창출되다보니 전통적으로 PEF들이 선호하는 자산군으로도 꼽힌다. 다만 인수 후보들 사이에선 회사의 본질을 '미래차 플랫폼'에 둘지 '자동차 부품사'에 둘지에 따라 가치 평가도 상반된 분위기다.

◆"배터리 못지 않은 핵심 기술" vs. "본질은 자동차 부품사"

한온시스템은 히트펌프, 전동 컴프레셔(E-compressor) 등 차량 전반의 열관리(공조) 부문 글로벌 2위 업체다. 전기차시대엔 배터리의 열관리가 주행거리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다보니 공조 기술이 핵심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삼성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한온시스템의 비교기업을 기존 자동차부품이 아니라 2차전지 및 소재업체에 준해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이 경우 회사의 기업가치도 EBITDA 대비 15.5배까지 가능할 것이란 시각이다. 올해 회사의 목표 EBITDA가 1조원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기업가치가 15조원까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난 3월 전동컴프레셔 분야 세계 3위 업체인 일본 산덴이 중국 하이센스에 매각된 점도 한온시스템 매각엔 호재로 꼽힌다. 기술 유출을 우려할 현대기아차를 포함 미국·유럽 완성차들이 덴소·한온시스템 수주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내 증권사 한온시스템 담당 애널리스트는 "내연기관 시대엔 에어컨·공조 기술이 다른 부품 대비 평가절하 되다보니 글로벌 부품사들도 크게 투자를 안하고 경시해왔는데 전기차 시대에 돌입하면서 핵심적인 역할로 바뀌어버렸다"라며 "기존 업체들은 이제와서 다시 따라가기 주저하고 있고 한온시스템은 꾸준히 해당분야에 집중해 투자했다보니 진입장벽이 생긴 셈"이라고 설명했다.
'10조원' 大魚 한온시스템, 인수자 확보 전략은
반면 일각에선 이 회사의 본질이 완성차업체와 끊임없이 가격 협상을 벌여야 하는 '부품회사'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온시스템도 꾸준히 테슬라, 벤츠, 폭스바겐 등으로 고객군 다변화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회사의 매출 40% 이상은 현대차그룹을 통해 발생하고 있다. 과거 KKR이 LS그룹으로부터 LS엠트론의 동박사업과 LS오토모티브를 함께 인수한 사례도 회자된다. 미래차 테마에 힘입어 동박사업은 1년여만에 3배 넘는 수익을 거두며 매각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완성차부품사인 LS오토모티브의 회수를 두곤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가 영업이익률 5%를 간신히 목표하는 상황에서 납품하는 부품사들이 단기간으론 그 이상 영업이익률을 거둘지 몰라도 전기차가 일상화되면 끊임없는 단가인하 압력에 시달릴 것"이라며 "안정적으로 지금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소화 걱정에"…공개매수·美 이전상장 시나리오도

거래 구조 측면에서도 고민거리는 산적해 있다. 통상적인 M&A에선 당장 자금 여력이 부족한 대기업 등 전략적투자자(SI)들도 PEF와 손잡고 조단위 거래도 소화하는 게 일상이 됐다. 하지만 한온시스템의 덩치가 너무 큰 탓에 PEF들이 대기업 자산을 담보잡는 방식 등으로 회수 방안을 구상하기도 쉽지 않다. 모태 사업을 되찾으려는 한라그룹, 우선매수권을 보유한 한국앤컴퍼니(이전 한국타이어) 등도 꾸준히 유력 인수후보로 꼽혀왔지만 보유한 현금성자산 등으론 부족한 상황이다. 여력있는 LG그룹과 SK그룹 등은 아직까지 참여 여부에 부정적인 분위기다.

일각에선 매각 측이 후보들에 한온시스템의 해외 이전상장을 통해 기업가치가 재평가될 수 있는 점을 '매력 포인트'로 제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사한 규모인 '넥슨' M&A에서도 이전 상장은 강조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공개 매수를 단행해 비상장회사로 만든 후 '전기차' '친환경' 테마 등이 더 부각될 수 있는 미국 증권시장에 이전 상장해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받는 시나리오, 인수를 위해 활용한 SPC를 스팩(SPAC) 합병 방식으로 미국에 상장하는 시나리오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20%~30%에 달하는 소액주주 지분을 공개매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국내 유가증권 시장에서도 이미 해외 못지않은 밸류에이션을 받고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매각 측 입장에선 폭스바겐, GM, 벤츠 등 글로벌 SI등을 이끌어와 '글로벌 M&A거래'로 판도를 바꾸는 게 가장 최선의 방안으로 거론된다. 매각이 장기화될경우 블록딜 등으로 보유 지분을 줄여 재도전하는 방안 등도 고민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플랜B'일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기술 차별화에 적극적인 투자를 집행하면서도 자국에 경쟁력있는 열관리 업체를 두지 못한 폭스바겐, GM 등이 한온시스템과 높은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