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09일 05:16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유창재의 딜북]다시 생각해볼 유암코의 존재 의의](https://img.hankyung.com/photo/201802/01.15959253.1.jpg)
두산엔진은 선박의 주동력원 역할을 하는 ‘주기 엔진’을 주력으로 만든다. STX엔진은 선박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보기 엔진’이 주력이다. 대형 선박에는 주기 엔진과 보기 엔진이 둘다 필요하다. 두 회사 모두 선박용 엔진을 만들지만 경쟁사가 아닌 이유다. 경쟁사는 주기와 보기 엔진을 모두 만드는 1위 업체 현대중공업이다. 두 회사를 합쳐 현대중공업에 버금가는 종합 선박 엔진 업체로 성장시키면 기업 가치도 끌어올리고 업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한앤컴퍼니는 STX엔진 본입찰에서 유암코(연합자산관리)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유암코가 더 높은 금액을 적어냈으니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유암코가 최근 진행 중인 두산엔진 인수전에는 참여하지 않자 내색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언젠가는 조선업 시황이 회복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 외에는 아무 전략도 없어보이는 유암코에 투자 기회를 빼앗긴 게 아쉬워서다. 최소한 유암코는 들어올 것으로 보고 두산엔진을 매물로 내놓은 두산그룹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유암코가 구조조정을 위한 기업 인수·합병(M&A) 판을 흔든 사례는 더 있다. 작년 9월 플랜드기자재를 만드는 JMC중공업 매각 입찰에도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입찰에서 유암코보다 5~6억원을 적게 써내 고배를 마신 건 세계 1위 풍력발전 설비 제조업체 CS윈드였다.
CS윈드는 2015년 대경기계기술로부터 인도네시아 자회사 대경인다중공업을 인수했다. JMC중공업과 같은 플란트기자재 제조업체다. 하지만 이 회사는 덩치가 작아 경쟁력이 떨어진다. 주요 플랜트 업체에 벤더(납품업체)로 등록되어있지 않아 자체 수주가 어렵다. CS윈드는 수주 능력을 갖춘 JMC중공업을 인수해 두 회사를 합치면 시너지가 클 것으로 판단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은 JMC중공업 전라북도 군산 공장에서, 저부가가치 제품은 대경인다중공업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만든다는 전략이었다.
군산공장의 규모가 꽤 크고 야적장도 있어 CS윈드의 풍력발전기 타워도 이 곳에서 만들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놓치기 아까운 매물이었다. 하지만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에 비해 더 높은 가격을 쓸 수는 없었다. 시너지보다는 자금력을 앞세운 유암코에 밀린 이유다.
유암코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부실채권(NPL)을 처리하기 위해 시중은행들이 출자해 만들었다. 2015년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 전문 회사를 만드는 대신 유암코에 구조조정 기능을 맡기기로 한 후 펀드를 잇따라 조성하며 M&A 시장에 뛰어들었다. 펀드는 외부 출자자(LP)를 모집하는 대신 자체 자금을 쏟아부어 조성한다. 이 자금으로 민간 기업 간의 M&A를 통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방해한다는 게 투자은행(IB) 업계의 불만이다. 민간이 하지 못하는 구조조정을 담당하라는 게 금융당국의 취지였을 것이다. ‘유암코는 왜 존재하느냐’는 시장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